재밌는 것 2009. 3. 20. 22:18

테슬라 코일


1. 테슬라코일

 

미국의 발명왕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토마스 에디슨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뒤에 가려진 남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니콜라 테슬라이다.

테스라는 1856년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 있는 폴리테크닉 스쿨에 입학,

전기공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학비가 모자라 일 년 다니다

퇴학했다.

1881년 헝가리로 이사하여 부다페스트의 중앙전신국에 취직했다.

다음해  에디슨 전화회사(현재의 AT&T의 전신) 의 파리 지사 콘티넨탈

에디슨사에 들어갔다.

여기서 실력을 인정받게 된 테스라는 사장인 C.베칠러의 소개장을 갖고

에디슨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 개성적인 신입사원과 독창성을 방패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에디슨과는 전혀 뜻이 맞지 않았다.

테스라는 일찍부터 교류전류에 착안해 이미 발전기의 기본설계를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 직류에 의한 발전기를 설치,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던

에디슨은 그의 의견을 계속 무시했다.

화가 난 테스라는 에디슨의 회사를 떠나 교류발전에 대한 특허 모두를

웨스팅하우스 회사에 팔아넘겼다.

에디슨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이윽고 교류시대가 도래한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업적은 시대를 앞서가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에 있었다.

무선통신을 이탈리아인 마르코니보다 앞서 발명한 사람도 그였고,

컴퓨터의 이론회로, 레이다, 초전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등 그의 업적은

지금도 이용되는 것이 많다.

테스라가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확대송신기> 라고 불리우는 에너지 전송

장치였다.

교류전류는 자계가 변화할 때마다 전자파를 발생한다.

교류전압기를 대형화하면 전선에 의지하지 않고 전기에너지를 공급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이다.

그는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설립한 연구소에서 장치의 개발에

몰두했다.

1899년 변압기는 약 1200만 볼트, 1100암페어를 달성, 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에 놓여진 50와트 백열등을 점화시킨다.

재벌의 원조를 얻은 테스라는 롱아일랜드의 워딘클리프에서 거대한

송신탑 건설에 나섰다. -전선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에너지 정보네트워크

의 실현-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의 꿈이 왜 실현되지 못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그 꿈을 실현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에디슨에 비해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와 그의 발명과 업적들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조직적으로

묻혀졌는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흔적은 단위면적을 통과하는 자속의 단위인 <테슬라>로

남아있다.

그가 남긴 테슬라코일은 저전압을 고전압으로 바꾸는 변압기의

일종이지만 철심을 사용하는 교류변압기와는 달리 철심이 없는

비자성체의 원통에 1차코일과 2차코일을 감은 것으로서, 1차코일에

불꽃방전 장치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고압 발생장치에서는 종종 입력보다 출력이 높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캐나다의 허치슨(JOHN HUTCHISON)에 의해 발견된 물체의

반중력 현상등과 같은 '허치슨 효과(Hutchison effect)' 에서도

테슬라코일이 중력을 제어하는 반중력장을 발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현상과 관련하여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 항공사는 1985년에

'뱅쿠버 실험관찰 보고서' 라는 이름으로 공식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허치슨효과--테슬라코일을 마주보게 설치한 뒤에 전원을 걸어주면,

그 사이의 공간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중력이 작용하지 않게 되어 물체가

위로 떠오른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든지 중력을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그외...

 

크로노 스피어 (쉬프트)

 

1943년 2차대전 중에 미국에서 극비리에 진행된 "레인보우"라는 군사 프로젝트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 "백 튜더 퓨처" 에서처럼 시·공간을 이동하는 실험으로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하탄 프로젝트"와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이라는데, 과연 어떤 실험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사건의 노출경로

이 사건은 저명한 UFO 연구작가였던 모리스씨에게 날아든 캐로스라는(사진참조) 사람의 편지 한통으로 부터 시작된다.

편지에는 1943년 10월 미해군이 아이슈타인박사의 이론과 테슬라의 원리를 이용하여 투명군함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으며 캐로스는 당시 실험으로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군함 Uss Eldrige를 필라델피아 남쪽의 Norfolk항구로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동을 하는데 성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실험에 참가한 승무원들이 죽거나 행방불명, 정신이상자가 되었기 때문에극비로 다뤄지고 있다고 씌여져 있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편지를 받은 모리스씨는 이 실험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미해군의 "레인보우" 프로젝트를 언론에 공개하려고 준비하던 중 1959년 4월 20일 자신의 집에서 암살되어 변사체로 발견되어진다.

그후 약 20년 동안 묻혀져있던 이 사건은 1980년 10월, FATE라는 잡지에서 편지가 공개되면서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2. 사건의 내막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미해군의 정보국은 유럽으로 가던 수송선들이 악명높은 독일의 U-Boat에게 계속하여 격침을 당하자 긴급하게 대비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비책을 세우던 미 해군은 아이슈타인이 발표한 물체의 투명성 원리를 이용해서 공간이동을 시도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고 미 해군은 이를 받아들여 테슬라박사가 발명한 상당한 파워의 전기장치인 테슬라 코일을 설치해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 지휘자인 니콜라 테슬라 박사는 물체의 투명화와 불가시화 현상(Invisibility)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다 이 기술을 생명체에 적용하는 것에 반대한 끝에 프로젝트에서 축출되었고 그로부터 10개월 후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결국 레인보우 프로젝트는 1943년 10월 28일에 거행되고, 전해진 바에 의하면 USS Eldridge호를(좌측사진참조)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남쪽 멀리 떨어진 Norfolk 항구로 공간이동을 시킨 후 다시 필라델피아 항구로 공간이동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우측사진참조)
기쁜 마음으로 갑판위로 올라가게 된 과학자들과 해군 관계자들은 전혀 예기치 않았던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갑판위에는 승무원들의 시체가 있었고 포탑주위에는 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채 죽어있는 승무원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실험을 위해 1500억 볼트의 전류가 발전기를 통해 유입됐다고 하는데, 그 양이 상당해실험후에도 위험 방사능 수치를 보여 갑판위에 올라간 해군 관계자들을 급히 대피시켰을 정도라고 한다.

실험당시 USS Eldridge호에는 176명의 선원과 민간과학자 5명을 포함해 총 181명이 탑승했는데 사라졌다 되돌아 왔을 때 생존자는 21명에 그쳤다.
40명은 방사능에 노출돼 죽거나 감전사로 타죽고 나머지 120명은 실종됐고, 생존자들도 대부분 정신이상자가 되어 제대를 했다.
전쟁의 와중에서 개발을 서두르다가 안전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승무원들이 타고 있는 실제의 선박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되어 피해는 더욱 컸다.
물론 이 실험에 대해 선원들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임했다고 한다.

이 가공할 만한 이 실험은 즉시 은폐됐고 나중에 영화로(Philadelphia Experiment) 만들어져 그 내막의 일부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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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 2008. 12. 29. 18:22

합기도.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쉬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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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 2008. 12. 29. 16:05

호랑이 쌍절곤 ㅋㅋ




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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